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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무엇인가 30년 여행가의 고백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박찬운…

2026년 8월 12일 · 좋은 글 모음

여행이란 무엇인가 -30년 여행가의 고백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박찬운 교수

나는 오랫동안 길 위에서 살았다. 누군가는 나를 여행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만 알겠지만, 나는 내 정체성을 단 하나의 단어로 정의한다. 여행자.

돌아보니 내 여행에는 세 번의 물결이 있었다. 그 물결을 따라 나는 세상이라는 책을 읽어왔다. “여행은 걸어다니는 독서다.” 이 말이 나를 여행으로 안내하는 평생의 모토였다. 여행은 걸어다니는 독서였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는 세번의 다른 독서를 하였다.

1단계 – 떠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젊은 시절, 나는 그저 답답했다. 일상이라는 틀 속에서 숨이 막혔다. 그래서 떠났다. 이유도 계획도 없었다. 가방 하나 메고, 지도가 가리키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문화도 언어도, 심지어 공기의 냄새마저 낯선 곳에서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숨을 쉬었다. 그 시절의 여행은 도망이었고, 해방이었다. 마치 책의 첫 장을 무작정 펼치는 것처럼. 나는 지금도 30년 전 워싱턴 디시 한 가운데 서 있는 대한민국의 한 젊은 법률가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2단계 – 세상을 읽는 여정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여행을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거대한 책을 읽는 일로 여겼다. 책상 위에서 펼치는 책이 아니라, 발로 걸어다니며 넘기는 책. 페이지는 대륙이었고, 활자는 사람과 풍경이었다.

그 시절 나는 문명기행에 빠져 있었다. 중국에서 시작해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바람을 지나 파미르 고원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유목민과 함께 차를 마셨다. 페르시아의 이스파한과 시라즈에서는 푸른 타일 문양 속에 스민 시인의 숨결을 느꼈고, 터키 아니톨리아에서는 히타이트인과 로마, 비잔틴이 남긴 돌기둥을 차례로 어루만졌다. 나일강을 따라 내려가 룩소르의 파라오 무덤과 신전 앞에 서면, 인류가 죽음에 관해 쓴 오래된 문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로마의 포룸에서는 서양 문명의 서두와 결말을 함께 읽었다.

그 모든 길 위에서 나는 책장을 넘기듯 걸었고, 문장을 읽듯 역사를 읽었다. 그때부터 내 여행은 본격적으로 ‘걸어다니는 독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3단계 – 사유하는 여행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깨달았다.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속도를 늦추었다. 지도 위의 빈칸을 채우는 여행이 아니라, 한 골목을 오래 걷고, 오래된 찻집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여행을 택했다.

시장 골목의 매캐한 향, 오래된 카페 의자에 스민 세월, 커피잔 위로 피어오르는 하얀 김 속에서 나는 남의 삶과 나의 삶을 겹쳐 보았다. 세상 어디든 사람은 웃고, 울고, 사랑하고, 싸운다. 그 보편성과, 땅이 품은 특수성이 함께 나를 사로잡았다.

여행자로 산다는 것
이제 나는 안다. 여행은 비행기 표를 사야만 시작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삶 자체가 하나의 여정이라는 것을. 나는 그 여정 위에서 떠나고, 배우고, 곱씹으며 살아왔다. 어쩌면 내 마지막 순간까지, 내 다리가 허락하는 한, 나는 세상이라는 책을 읽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날, 나는 미소 지을 것이다. “그래, 나는 끝까지 여행자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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